3.3 MOSFET, 작은 칩 안에 들어간 트랜지스터

앞서 〈그림 3-4〉(a)에서 살펴본 트랜지스터 부품을 전선으로 이어 전자 회로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면, 〈그림 1-1〉에서 보았던 CPU 칩으로 대표되는 시스템 반도체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단지 몇 개의 트랜지스터 부품만 더 연결해도, CPU의 크기를 훨씬 넘어설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CPU 칩은 트랜지스터들이 모여 구성된 전자 회로라고 불린다. 어떻게 CPU 칩을 트랜지스터 회로라고 말할 수 있는지, 반대로 트랜지스터 회로가 CPU 칩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자.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복잡하고 큰 회로를 원하면서도, 그 회로의 실제 크기는 작았으면 했다. 그래야 그 작은 전자 회로를 바탕으로 복잡한 기능을 하는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 때문에 〈그림 3-4〉(a)의 물리적인 트랜지스터를 〈그림 3-1〉처럼 전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의 회로는 한계에 부딪쳤고, 다른 방식을 찾던 중, 반도체 위에 트랜지스터를 새기는 기술, 그리고 MOSFET이 등장하게 된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작은 칩 안에 우리가 원하는 수백억 개의 물리적인 트랜지스터가 연결된 전자 회로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회로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1.2절에서 칩을 반도체라고 부르는 것은 칩을 만드는 재료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 재료인 반도체는 조건에 따라 전류가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 않기도 하는 물질이다(반도체라는 이름은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거의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 성질을 가진다는 데서 왔다). 바로 이 성질 덕분에 반도체 위에 전기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회로를 만들 수 있다. 칩을 만들 때는 실리콘 같은 반도체 재료를 얇고 둥근 판으로 가공한 웨이퍼를 사용한다. 〈그림 3-6〉(a)는 가공 전의 웨이퍼이고, (b)는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쳐 전자 회로를 새긴 웨이퍼다. 자세히 보면 웨이퍼 위가 사각형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안에 미세한 선들이 새겨져 있다. 이 선들이 모여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사각형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공 전 반도체 웨이퍼
회로가 새겨진 반도체 웨이퍼

〈그림 3-6〉 (a) 가공 전 반도체 웨이퍼 (b) 공정을 거쳐 전자 회로의 기능을 하는 웨이퍼

웨이퍼를 칩으로 만드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큰 흐름만 짚어 보자. 반도체는 원하는 부분에 불순물을 넣어 주면(전문 용어로 도핑, doping) 그 부분의 전기적 성질이 바뀐다. 이 성질을 이용해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치면 웨이퍼 위에 아주 작은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금속 배선을 여러 층 쌓아 트랜지스터들을 서로 잇는다. 이렇게 트랜지스터와 배선을 함께 새기면, 원하는 형태의 회로를 웨이퍼 위에 구성할 수 있다.

불순물을 넣는 과정을 비롯한 여러 공정을 거쳐 웨이퍼 위에 만든 트랜지스터 구조가 〈그림 3-7〉과 같은 MOSFET(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 Transistor)이다. 이 구조는 마지막 영어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3.2절에서 본 트랜지스터처럼 전압으로 길을 여닫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림 3-7〉(a)의 개념적인 MOSFET 구조에서는 〈그림 3-4〉의 B 대신 Gate, C와 E 대신 Drain과 Source라는 이름을 쓴다. Gate에 전압을 인가하면 Drain과 Source가 이어져 전류가 흐르고, 인가하지 않으면 끊어진다. 〈그림 3-4〉의 트랜지스터 부품에서 B에 전압을 인가하면 C와 E가 이어지던 것과 같은 동작이다. 두 소자는 내부 구조가 서로 다르지만, 전압으로 길을 여닫는 스위치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즉, 기능은 동일하지만, 〈그림 3-4〉의 트랜지스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인 반면, 웨이퍼에 새겨진 MOSFET 구조는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크기를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 〈그림 3-7〉(b)는 전자 현미경으로 칩 내부를 보았을 때 보이는 MOSFET 트랜지스터의 구조이다. 말 그대로 고성능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의 트랜지스터는 칩 안에 아주 많이 모아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트랜지스터와 그 연결선을 작은 반도체 조각 하나 위에 촘촘히 모아 만드는 것을 전문 용어로 집적한다고 표현한다. (참고로, 그렇게 만든 회로를 집적 회로(IC, Integrated Circuit)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칩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집적 회로의 일종이다)

Gate, Source, Drain으로 이루어진 개념적인 MOSFET 구조
전자현미경으로 본 트랜지스터 단면

〈그림 3-7〉 (a) 개념적인 MOSFET 구조 (b) 전자현미경으로 본 트랜지스터

이것을 이해했다면, 반도체 웨이퍼에 여러 공정을 거쳐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연결된 작은 칩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웨이퍼 하나에는 같은 회로가 여러 개 새겨진다. 앞에서 〈그림 3-6〉(b)에서 본 사각형 하나하나가 바로 이 회로 하나씩이다. 이 사각형들을 하나씩 잘라 낸 뒤, 반도체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감싸는 패키징(Packaging) 같은 후공정을 거치면 우리가 흔히 보는 모양의 전자 부품, 즉 칩이 된다. 그래서 CPU 칩 내부는 반도체 기반의 MOSFET 회로로 구성된다. (다만 모든 칩에 트랜지스터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DRAM처럼 트랜지스터와 함께 커패시터라는 소자를 쓰는 칩도 있는데, 이는 4.6절에서 다시 살펴본다.)

앞서 반도체 공정이라는 간단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무 가공도 되어 있지 않은 웨이퍼로부터 전자 회로의 역할을 하는 칩을 만드는 데까지는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들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반도체 공정이라고 부른다. 여러 중요한 과정들이 있겠지만,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술력은 얼마나 작은 면적에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를 새겨 넣을 수 있느냐에 있다. 같은 크기의 칩에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새겨 넣을수록, 그만큼 더 복잡하고 큰 회로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한 반도체 공정 이야기는 추후, 9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번 절을 통해 CPU와 같은 칩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칩은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그 안에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연결된 거대한 전자 회로가 들어 있다. 이제 칩을 볼 때면, 그 안에 미세하게 새겨진 회로들이 보이는 투시 능력이 생겼으리라 믿는다.

증기기관과 전기가 산업 혁명을 일으켜 세상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이, 반도체 위에 MOSFET을 새겨 넣는 기술과 이를 칩 하나로 모은 집적 회로의 등장은 칩 생태계를 탄생시켰고, 오늘날의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과 거대한 AI 모델을 실행하는 데이터센터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