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 주변의 컴퓨터, 그 안의 칩
앞 절에서는 연산과 기억을 맡는 칩을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칩으로 구성된 가장 익숙한 기기가 컴퓨터다. 책상 위의 데스크톱이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노트북 안에는 CPU처럼 연산을 맡는 칩과 정보를 기억하는 메모리 칩이 들어 있다. 우리가 쓰는 인터넷 서비스를 떠받치는 서버도 같은 구성의 컴퓨터다. 우리가 화면을 보며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그 안의 칩들은 필요한 연산과 기억을 수행한다. 컴퓨터 한 대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하는 프로그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킬지는 프로그램에 달려 있고, 컴퓨터 안의 칩들은 그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
컴퓨터의 모습은 여기서 더 넓어진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 안에도 연산과 기억을 맡는 칩들이 들어 있어, 인터넷에 접속하고 문서를 작성하며 사진과 영상을 처리한다.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 안에서도 칩들이 몸의 상태를 측정하고 메시지를 보여준다. 거실의 스마트 TV 안에서도 칩들이 함께 일하며 인터넷으로 받은 영상을 재생하고 사용자의 조작에 반응한다. 생김새와 크기는 달라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책상 위 컴퓨터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기 어색한 기기 안에도 칩이 들어 있다. 세탁기 안에는 사용자가 고른 세탁 코스와 물의 양 등에 맞춰 동작을 조절하는 칩이 있다. 냉장고 안에도 안쪽 온도를 살펴 냉각을 조절하는 칩이 들어 있다. 자동차 안에서도 여러 칩이 차량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엔진과 모터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우리가 세탁기나 자동차를 사용할 때 컴퓨터를 조작한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는 칩들이 프로그램의 지시에 따라 연산하고 기억하며 일을 하고 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하는 일은 컴퓨터와 같다.
이런 변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칩이 몇몇 기기 안에만 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주변의 거의 모든 전자기기가 칩을 품고 있다.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던 기계에 칩이 들어오면서, 상황을 판단하고 동작을 바꾸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컴퓨터는 화면과 키보드가 달린 특정한 모습의 기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손에 들고 다닐 수도 있고, 다른 기기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겉모습과 용도는 달라도 밖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억하고 연산하여, 결과나 동작으로 내보낸다는 기본 골격은 같다.

하지만 모든 컴퓨터가 똑같은 칩과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워치는 손목에 찰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하고, 작은 배터리로도 오래 작동해야 한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은 문서 작성부터 게임까지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두루 처리해야 한다. 자동차 안의 컴퓨터는 차량에서 계속 들어오는 정보를 필요한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한다. 맡은 일이 다르므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도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는 어떤 칩을 사용하고 어떻게 연결할지에 영향을 준다. 칩 자체도 다양한 일을 두루 처리하도록 만들거나, 특정한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내부 구조를 달리할 수 있다. 기기의 기능은 그 위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과 이를 뒷받침하는 칩이 함께 만들어낸다. 따라서 칩을 살펴보는 것은 그 기기가 어떤 일을 잘하도록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한 가지 길이다.
칩의 동작 원리를 배우면 책상 위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세탁기, 자동차도 그 안에서 일하는 컴퓨터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정보를 기억하고, 어떤 연산을 하며, 그 결과로 무엇을 움직이는지 질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달라도 그 아래에서 일하는 칩의 원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 서로 다르게 만들어진 이유도 결국 같은 원리 위에서 설명된다. 이제 이 원리를 어떤 순서로 알아갈지 살펴보자.